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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전라북도 콕 찍어 알차게 돌아보기

13579 2012. 5. 13. 12:05



1 전주 화명원. 화명원은 화목하게 지저귀는 집이라는 뜻으로 부부의 금슬이 좋아 가정이 평화롭다는 의미다 2 진안 마이산 탑사의 삼존상 3 전주 경기전 외곽 돌담길 4 새만금방조제의 시작점인 부안의 일몰

전라북도 콕 찍어 알차게 돌아보기

흔히 여행지로서 전라도를 이야기하면 남도를 떠올리는 것이 다반사다. 전라북도 하면 비빔밥의 성은을 입은 전주 정도가 생각난달까? 하지만 교과서에 나오는 유적지, 화려하게 소개된 관광지만 찾아다니는 게 여행의 능사는 아니다. 전라북도에 가면 화려하진 않아도 푸짐한 인심이 있고, 취하며 놀 만한 술과 맛깔난 안주가 있고, 볼수록 매력적인 걸출한 여행지들을 도처에서 만날 수 있다. 

글·사진  도선미 기자   취재협조  전라북도청 www.jeonbuk.go.kr

익산

서동의 꿈이 거기 있었네 미륵사

용 아버지와 인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마를 캐며 살던 소년이 있었다. 간이 부어도 한참 부은 이 소년은 언감생심, 공주랑 사귄다고 소문을 내서 고귀하신 마마님의 혼삿길을 애저녁에 가로막고, 급기야 왕위까지 물려받았더랬다. 가난한 소년에서 왕으로 벼락출세한 이 사람이 바로, 백제 시대 최고의 육식남, 무왕되시겠다. 

무왕 서동이 나고 자란 익산에서 그와 얽힌 이야기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특히 미륵사는 무왕과 그의 부인 선화공주의 명으로 창건했다고 전하는데 그 규모가 당대 동아시아 최대에 달할 정도였다고 한다. 세 곳의 금당도 각각 독립적인 사찰 역할을 했고, 승방 자리에서 출토된 치미가 웬만한 사찰만하다니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지금은 가람 건물 전체와 목탑인 중탑이 소실됐고, 미륵사지 9층석탑으로 더 잘 알려진 서탑은 해체 작업 중이다. 오로지 9층 동탑만이 덩그러니 남아 허허벌판을 지키고 있다.  

미륵사 가람이 있던 곳은 원래 호수였다고 한다. 땅을 파보니 정수기처럼 모래와 자갈, 바위로 못을 메운 흔적이 나타났단다. 삼국유사에서도 무왕이 이곳을 지나던 중 연못 속에서 미륵삼존이 출현해 절을 세우게 됐다고 전하고 있다. 백제의 가람은 보통 탑 하나에 금당 하나가 기본 양식인 데 반해 미륵사만 3탑 3금당의 거대한 절이 된 이유도 여기 있다. 미륵보살은 기독교로 치면 예수와 같은 존재로 3번이나 재림해 설법을 한다고 전하기 때문이다. 

해체 중인 서탑은 지난해 엄청난 화제를 몰고 왔다. 1998년 처음 시작해 10여 년 만에 기단부 해체에 이르렀는데 심주석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 12개가 발견된 것이다. 일제강점기에도 일본인들이 보물을 찾기 위해 여러 번 탑을 조사했지만 심주석에 숨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백제 사람들은 어쩌면 천년 후를 내다본 걸까?
서탑의 복원은 2014년에야 끝난다. 인근의 왕궁리 유적에서 궁궐이었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출토됐고, 국교인 불교의 최대 사찰이 있었던 점 등으로 미루어 부여가 아닌 익산이 백제의 마지막 왕도였다는 설,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천도했으리라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무왕은 정말 익산으로 천도했을까? 그가 용의 아들이고 미륵보살의 상징이 용이라는 점은 우연의 일치일까? 또 하필 용이 살 법한 거대한 호수에 절을 세운 점도 말이다. 익산 어딘가에는 마를 캐던 소년의 오래된 꿈이 발굴되길 기다리며 고요히 묻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1 미륵사 건물은 사라지고 승방의 치미만이 남아 그 규모를 짐작케 한다 2 미륵사지석탑으로 유명한 미륵사 서(西)탑은 해체 및 복원 작업 중에 있다. 지난해 기단부 심주석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출토돼 학계를 놀라게 했다 3 터만 남은 미륵사. 사진에 보이는 동탑은 1993년 복원됐다


 익산의 마 음식 전문점, 본향

서동 무왕이 어릴 적 주식으로 삼았다던 ‘마’가 익산의 명물인 것은 당연지사. 마국수에서부터 시작해 마를 재료로한 레시피도 가지각색이다. 그중에서도 재미있는 음식점이 하나 있어 소개한다. 맛도 맛이지만 코미디언에 버금가는 사장님의 작명 실력이 식사를 더욱 유쾌하게 한다. 예를 들어 마로 만든 약밥인 ‘마약밥’에 관한 설명에 마약사범신고 번호를 적어 넣는다든지, 삼천궁녀와 41명의 자녀를 거느린 의자왕을 ‘마를 먹고 왕성한 정력을 갖게 된 호걸’로 묘사한다든지 하는 식이다. 

특별메뉴 ‘욘사마’는 지난해 이 식당을 방문한 배용준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요리다. 얇게 저민 마로 복슬복슬한 새싹을 둥글게 감싸 두상을 만들고, 쪽파를 길게 빼 ‘꽁지머리’를 만들었다. 검은 도토리묵 ‘오바마’는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을 기념해 만든 것. 물론 검다는 점만이 유일하게 닮았다. 단, 이 메뉴들의 생사는 전적으로 오바마와 욘사마의 인기에 달려 있다는 사실! 

직접 맛본 바로는 고소하고 찰진 마약밥과 마식혜, 백제시대 9명의 충신들이 불면증에 걸린 왕을 위해 만들었다는 마약떡(구선왕도고), 서걱서걱한 맛이 색다른 마튀김 등을 추천한다. 3인 이상일 때는 정식도 가능하다.
주소 익산시 신동 139-6  전화번호 063-858-1588  가격대 마약밥 정식 1인 기준, 1만원(9품 요리+기본찬+마약밥) 


부안

다시 살고 싶은 생  내소사

부안에서 변산반도와 함께 필수로 거쳐야 하는 여행 코스가 바로 내소사다. 이 절은 특히 150여 년 된 1,000여 그루의 전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내소사 전나무 숲으로 들어서는 일주문 앞에서 들으니 내소사는 ‘다시 소생한다’는 의미이고, 이 문을 넘어서면 현세의 더께를 벗고 내세로 들어서는 것이라 한다. 푸르고 곧게 뻗은 전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가 무거운 생각을 정리해 주는 듯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숲길이 끝나는 곳에서 보면 천왕문을 프레임 삼아 사찰과 함께 뒤편의 능가산까지 한 폭에 들어온다. 험한 바위산과 어우러진 사찰의 자태, 바다가 가까운 탓에 염분기에 닳아 버린 단청은 흐릿하고 물기 어린 동양화 그 자체다.
절에는 새해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사람들이 다녀간 흔적도 많았다. 새해, 새 삶을 소망하는 글귀들도 오색천에 새겨졌다. 바람에 의해 읽히고 부처님에 전해질 목소리들이다. 템플스테이도 가능하니 좀더 마음을 다지고 싶다면 며칠쯤 묵으며 쉬는 것도 좋다.



1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걸으면 마음이 정갈해진다 2 관음보살을 모신 내소사 대웅전 3 오색천에 새긴 새해 소망

새만금, 흙이 된 바다

1999년부터 개발을 시작한 새만금은 곧 매립이 끝나고 올해 4월 말에는 방조제가 개통된다. 아직은 일부 구간만 개방돼 있지만 개통 이후에는 멋드러진 해안도로를 내달릴 수 있게 됐다. 이 도로를 이용하면 군산에서 부안까지 무려 66km, 30분 이상 시간이 단축된다. 특히 해질 무렵을 이용하면 환상의 낙조를 볼 수 있다. 시에서는 방조제 2층버스도 운행할 예정이고, 개통에 맞춰 성대한 축제도 열린다고.

진안

정 도타운 암마이 숫마이  마이산 

홍은 동이요, 백은 서. 밥상머리의 따뜻한 국은 오른쪽이요, 밥은 왼쪽이다. 자고로 신랑은 오른쪽, 신부는 왼쪽, 해는 동쪽에서 솟고, 달은 서쪽에서 뜬다.
오랫동안 왼쪽과 오른쪽을 각각 여자와 남자, 음과 양으로 구분해 철썩같이 지켜 온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오죽하면 국기도 태극(太極)기다. 그러니 음양의 조화를 중시하는 배달민족의 후손으로서 음양이 점이지대를 이룬, 영기 탱천하는 마이산(馬耳山)에 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더욱이 암마이봉과 숫마이봉 사이, 음기와 양기가 고여드는 좁은 골짜기에 똬리를 튼 탑사(塔司)라면 말이다. 실제로 마이산의 고드름은 위에서 아래로 자라는 게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 솟는다고 한다. 

하늘로 승천하는 마이산의 기를 눌러놓기 위해 만들었다는 돌탑과 절이 바로 마이산 탑사를 이룬다.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힘든 도교 절인데, 축지법도 쓰시고, 일필휘지로 30권의 책도 남기셨다는 전설의 도인, 이갑룡 처사가 지었다. 그는 효령대군의 후손이라는데 100여 기에 달하는 돌탑을 무려 30여 년에 걸쳐 쌓았다. 이 모든 탑을 오로지 고작 한 사람의 ‘인간’이 쌓았다니, 무거운 돌을 지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며 쌓았다니, 경이로울 따름이다. 

축지법은 그렇다 치고 이 많은 돌들은 대체 어디서 얻었을까? 곰곰이 생각하며 주변을 둘러보면 산세가 범상치 않음을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흔히 보는 바위산과 달리 자갈과 모래가 퇴적돼 만들어진 것으로 군데군데 자갈들이 떨어져 나가 곰보처럼 얽어 있다. 과거 호수였던 지역이 용암분출로 매립되고 융기해 만들어진 것. 물고기 화석 등도 종종 발견돼 옛날 사람들은 용궁이 있던 자리로 여기기도 했단다. 

본당 뒤에는 천지탑과 오행을 상징하는 오방탑 등이 있어 역시 도교적인 세계관을 드러낸다. 막혀 있는 것처럼 보여도 암마이봉 등산로를 통해 산을 넘을 수 있는데, 아쉽게도 2014년까지는 보존 차원에서 입산을 통제한다고 한다. 

1 마이산 골짜기에 자리한 탑사는 마치 절이 돌틈을 뚫고 솟아난 것 같다


진안 명물, 홍삼스파

홍삼 특구로 지정됐을 만큼 유명세를 탄 진안 홍삼을 토씨 그대로 ‘온몸으로’ 맛보는 곳이 있다. 지난해 12월15일 개장한 진안홍삼스파는 진안군에서 직접 운영하면서 품질을 관리하는 시설이다. 이곳에서 운영하는 음양오행프로그램은 홍삼입욕제를 이용한 홍삼 아로마테라피뿐 아니라 콩자갈과 허브, 머드 등을 이용한 각종 테라피와 스파 등을 제공한다. 노천온천으로 꾸며진 옥상은 마이산의 뷰포인트로도 최적이다. 숫마이산과 암마이산이 정면으로 내다보이는 탕 안에서 한번 더 음양의 조화를 느껴 보자. 

근처에는 진안유적박물관, 용담댐, 마이산이 있어 하루 정도 숙박하며 둘러보기도 손색이 없고, 무주리조트 스키장이나 장수, 광주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여독을 풀기도 좋다. 진안버스터미널에서 시내 버스가 있으며, 택시로 4,000원 정도 거리다. 

홈페이지 www.redginsengspa.kr
가격대 홍삼스파 음양오행코스 3만9,000원, 호텔(홍삼빌) 이용시 2인 1실(더블) 8만원, 4인 1실(트윈) 10만원. 숙박시 스파는 10% 할인되며 객실이 26개로 적은 편이라 비수기에도 열흘 전 예약은 필수다.  


2 탑사 뒤편의 오방탑. 동서남북과 그 가운데를 나타낸다 3 탑사를 만든 장본인인 이갑룡 처사. 축지법을 통해 돌을 옮겼다는 전설의 주인공이다 4 마이산은 역암층으로 이뤄진 독특한 지질 구조를 갖고 있다 5 암마이산이 섬진강과 금강이 가라지는 분수령이다


고창 

그 많은 돌들을 누가 다 옮겼을까  고인돌

영국의 스톤헨지가 알고 보면 한반도에서 건너간 것일 수도 있다? 국수주의 사학자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한반도에는 전세계 고인돌의 절반 이상인 5만여 기가 있고, 다양한 모양이 두루두루 나타나 ‘한반도 고인돌 자생설’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이런 특징을 인정받아 전라북도 고창과 화순, 강화 세 곳은 지난 200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기도 했다. 

이중 고창 고인돌이 독특한 이유는 그 밀도와 모양 때문이다. 고창에만 2,000여 기가 있는데 이 같은 밀도는 세계에서 유일무이하다고. 고인돌의 3가지 유형도 모두 갖추고 있다. 강화도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긴 다리에 날렵한 뚜껑을 인 탁자식 고인돌만, 화순에는 다리 없이 거대한 괴암을 얹어 놓은 개석식 고인돌만 있는 반면, 고창에는 여기에 더해 다리가 짧은 바둑판 모양까지 골고루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고창에서야 가정집 뒷마당이나 논밭에서도 고인돌을 볼 수 있지만, 진짜 고인돌 명소는 따로 있다. 고창에서 고인돌 분포 밀도가 가장 높은 죽림리 일대가 그곳. 세계문화유산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700m2 남짓한 공간에 447기의 고인돌이 빼곡하다시피 들어서 있고, 국내 유일의 고인돌 박물관도 함께 자리해 이해를 돕는다. 

참, 교과서에서 배운대로라면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인데, 그럼 고창엔 청동기시대에만 2,000명이 넘는 지배자가 있었을까? 물론 아니다. 고인돌은 지배자의 가족 무덤인 경우도 있고 상대 집단과의 전쟁 중 전사한 사람들의 무덤일 수도 있다. 고인돌박물관에서 나와 다리를 건너면 산책로를 따라 늘어선 고인돌을 볼 수 있는데, 인공적인 느낌 없이 짐짓 태연하게 수천년을 붙박인 그 모습을 보면 무덤이나 제단이라는 이야기보다는 민간의 이야기가 더 실감나게 다가온다. 힘센 장수들이 돌팔매나 공기를 하며 힘자랑을 하다가 아무렇게 놓은 것이라는 둥, 장수들이 성을 쌓기 위해 들고 왔다가 이미 성이 완성됐다는 소문을 듣고 그 자리에 내려놓고 간 것이라는 둥, 여전히 전승되는, 어디서나 약간은 비슷한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1 세계문화유산이라는 고창 고인돌. 고창읍부터 아산면까지 흩어져 있다 2 국내 유일의 고인돌 박물관이 고창에 있다. 고인돌의 종류와 생성 과정. 해외의 고인돌과 청동기시대 상황 등 교육적인 내용이 많아 아이들과 방문하기 좋다 3 그 많던 고인돌은 이렇게 옮겼다


풍천장어에 복분자 먹으면 고인돌도 번쩍!

작설차와 함께 고창의 3대 특산물로 꼽히는 풍천장어와 복분자는 양과 음이 만나 이룬 환상의 스태미너 음식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실뱀장어는 민물에 올라와 7년 가까이 살다가 산란을 위해 다시 바다로 돌아간다. 이때 잠깐 바닷물과 민물이 합해지는 지역에 머물게 되는데 이때 잡힌 장어가 가장 맛이 좋다고 한다. 고창 선운사 앞에 서해 바닷물이 흘러들어와 형성된 고랑인 풍천(風川)이 바로 그런 지형. 장어의 제왕으로는 풍천장어, 풍천장어 중에서도 최고의 맛을 자랑하는 게 풍천갯벌장어다. 보통은 산란을 위해 돌아오는 실뱀장어들을 잡아 양식하는데, 풍천장어는 이를 일정기간 자연 상태의 갯벌과 바닷물에 ‘방임’해 육질을 탄탄하게 했다. 실제로 먹어 본 장어 요리는 먼 바다와 강을 거슬러 오른 끈기만큼 쫀득했다. 여기에 100% 복분자 열매로 빚은 술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어쩌면 구석기인들이 고인돌을 세울 수 있었던 비결이 고창의 천연 스태미너 식단에 있었던 게 아닌지 싶다.
우진갯벌장어┃주소 고창군 고창읍 월곡리 283-1  전화번호 063-564-0101 
가격대 갯벌장어 1인분(1마리) 1만5,000원 정도.

전주

맛도 멋도 좋을씨고! 한옥마을

전주가 어이하여 예향의 고장이 됐을까나? 아마도 태조 이성계와 관계가 많지 않나 싶다. 전주 이씨의 21대손으로 알려진 태조 이성계는 아시다시피 유교의 나라 조선을 건국했다. 왕조가 태동한 도시라는 자부심과 꼬장꼬장한 양반 문화, 그와 더불어 걸쭉해진 민심의 해학까지 녹아든 곳이 바로 전주다.

기왓장이 반들반들한 양반집 700여 채가 모인 전주한옥마을은 서울의 북촌만큼 정겹지는 않아도 전주의 문화를 배울 수 있어 이색적이다. 다소 아카데믹한 면이 있긴 하지만 풍남동에서 교동에 이르는 골목골목에 전통술박물관, 전주공예품 전시관, 한지박물관 등이 있다. 전시관에는 연구사들이 직접 가르쳐주는 공예, 주조 강좌도 있다. 전통술박물관(www.urisul.net)에서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누룩 만들기 체험을 할 수 있고, 전주전통문화센터에서는 전통 혼례 체험(www.jt.or.kr)이 가능하다. 

한옥마을과 가까운 전주 시내 복판에는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이 있다. 범인들은 대문이 아닌 곁문으로만 들어가야 하는데, 홍살문을 거쳐 잡스런 기를 털고 들어가게 돼 있다. 태종 이방원이 부친의 어진을 모시기 위해 만들었던 것이 임진왜란 당시 소실됐다가 광해군 때 복원했다. 어진 속 태조는 살아생전과 마찬가지로 청룡포를 입고 있다. 오방색의 첫 번째가 청색이기도 하고, 청색이 동방을 의미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태조를 가운데 두고 양편으로는 그의 손자였던 세종부터 대대손손 순종에 이르기까지 7명의 왕의 어진이 포진해 있다. 어진을 향해 있는 가운데 길은 돌출돼 있는데 혼령이 다니는 길이다.




1 국내에서 유일하게 적벽가를 완창하는 민소완 명창과 전라북도무형문화재 9호 주봉신 고수의 판소리는 전주의 가장 빛나는 보물이다 2 전주한옥마을에는 다양한 박물관이 자리한다. 경기전까지 이르는 길을 걸어서 둘러보기 좋다 3, 4 생막걸리와 비빔밥은 전주의 상징. 푸짐한 밑반찬과 안주는 전주의 인심을 대표한다

 
누가 뭐래도, 전주비빔밥

이제는 뉴욕에서도 팔리는 글로벌푸드 비빔밥. 그 원조가 전주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든 알 테다. 전주비빔밥은 제사 후 남은 음식을 섞어 이웃집에 돌리는 풍습에서 유래됐다고 하는데 예향인 전주에서는 아마 오래도록 지켜져 본고장이 된 것 같다. 비빔밥에는 많게는 총 28가지 재료가 들어간다니 종합영양제가 따로 없다. 임금님 수라상에도 올랐던 이 음식을 두고 어느 누구는 양두구육이라고 했다던데, 코웃음칠 일이다. 종로회관 jongrofood.jjf.co.kr 


한상 가득 후덕한 인심, 전주 생막걸리 

밥맛뿐 아니라 술맛도 꿀맛인 전라도. 그 꿀맛의 비결은 바로 ‘곰팡이’에 있다.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 만난 김지성 연구사에 의하면 한국의 술은 사람이 아니라 누룩 효모가 만드는 거라고. 일본의 경우 쌀의 정미 상태에 따라 맛이 달라지지만, 우리나라 술은 곰팡이의 일종인 누룩으로 맛을 내는 것이다. 때문에 유통기한이 짧은 술일수록 효모가 살아있어 맛이 좋다. 

전주에는 삼천동을 비롯해 막걸리거리가 여럿 있는데, 그중 서신동은 최근에 생겼다. 동네는 달라도 술맛 좋고, 안주가 한상 가득 푸짐하게 나오는 점은 같다. 술 주전자가 추가될 수록 안주도 늘어나니 주문을 멈추기가 힘들다. 전주막걸리와 서울막걸리의 차이를 알고 싶은 독자를 위해 전주토박이들에 캐물었으나 묵묵부답. 주인장도 모른단다. 개인적으로는 전주막걸리는 신맛 뒤에 단맛이 따라온다는 점에서 서울 막걸리와 반대고, 양은잔에 마시니까 막걸리의 투박함이 그대로 전해져 좋았다. 

옛촌막걸리┃주소 전주시 완산구 서신동 843-16  전화번호 063-272-9992  가격대 막걸리 한 주전자에 김치전, 삼계탕, 족발 기본안주 1만2,000원. 오후 6시부터 새벽 3시까지 연다.

출처 :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세상 만들기
글쓴이 : 수사랑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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